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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김학우 CONTEST 개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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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L0HQ 작성일06-09-19 14:50 조회5,2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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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김학우 CONTEST 계획



   한글전신부호창제기념

제1회“김학우 CONTEST”개최안내



  매년 한글날을 접하여 한글전신부호의 창시자 김학우(金鶴羽, 1862∼1894)선생의 업적을 기념하고, 한글교신 활성화를 위한 한글전신 콘테스트를 개최합니다.



1. 콘테스트 일정 내용


ㅇ 개최일시 : 2006. 10. 08.(일) 00:00 - 24:00

ㅇ 교신상대 : 국문전신 운용국

ㅇ 호출방법 : CQ.. HAN TEST(DE HL...K)

ㅇ 참가부문 : 개인국, 단체국

SWL 참가 : 수신 리포트

(교신상호 2국의 1 시간, 2 주파수, 3 신호리포트, 4 지역, 5 이름)

ㅇ 밴드모드 : 7MHz(CW) / U/V BAND (F2A 운용가능자)

ㅇ 교환방법 : RST + QTH(시,시군구) + 성명

               예시) 599 대전 중구  홍길동

ㅇ 교신점수 : 1교신당 5점, SWL 동일적용

ㅇ 멀    티 : KDN

ㅇ 점수계산 : 교신점수의 합 X 멀티의 합

ㅇ 제 출 일 : 2006년 11월 10일까지

ㅇ 시 상 : 개인 1, 2, 3위 표창장 및 부상

단체 1, 2, 3위 표창장 및 부상

SWL 1, 2, 3위 표창장 및 부상

참가자 전원 (LOG 제출국) 참가증 발급



2. 규   정


ㅇ 교환내용 중 위치, 이름은 반드시 국문으로 하여야 함

  ㅇ QTH는 시, 군, 구 명과 함께 KDN으로 확인할 수 있음.

   ㅇ 50국 이상 교신 시 Dupe Check List제출

   ㅇ 운용자는 반드시 SWL을 위해 가능한 25∼30부호정도 저속으로 한글전신부호로

교신하여야 한다.

ㅇ SWL리포트는 2개국의 정보(신호, 위치, 이름과 시간, 주파수를 기재함)

   ㅇ 중복국은 1교신만 적용.

   ㅇ 단체 국에서 1명이 운용을 했다면 Single- OP부문으로 신청




3. 로그 작성 시 유의사항


   ㅇ 성명, 호출부호, 참가부문, 주소, 참가소감 기재

  ㅇ 교신시간 (KST) 및 주파수

   ㅇ 상대방 RST, QTH, 성명

   ㅇ 중복국은 중복표기 할 것.

ㅇ SWL은 수신시각. 주파수. 교신상호간의 콜사인. 신호(RST). 지역. 이름



4. 접  수


   ㅇ 제출마감 : 2006년 11월 10일까지(마감일 소인유효)

  ㅇ 접수방법 : 우편접수 (연맹 사무국 전신담당 앞)

   ㅇ 접수결과 : 홈페이지 및 KARL지에 공고



(사)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전신위원회 위원장 HL2DCB 이종만





김학우(金鶴羽, 1862∼1894)


1862(철종 13)∼1894(고종 31). 조선 말기의 개화파 관료. 본관은 김해. 자는 자고(子皐), 함경북도 경흥의 토반출신. 본관 : 김해(金海) 시호 : 헌민(獻愍)


김학우는 함경도 경흥에서 태어나 홀어머니와 살다가 10세 때 어머니와 함께 작은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하여 생활하다 고종1876년 일본과 맺어진 강화도 조약으로 개국한 조선으로서 러시아말과 일본말, 중국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여 김학우는 1882년 서울로 오게 되었고, 1884년 일본이 부산과 장기간에 해저 전선을 개통시킨데 자극받은 김학우는 조선에도 전신을 가설해야 한다고 국왕에게 건의했고, 국왕은 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를 일본으로 파견하여 전신에 대한 현황파악과 기술습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여 전신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기술적 소양을 갖춘 김학우는 일본에 도착하여 다른 한사람과 도쿄로 가서 매일같이 전신본국을 찾아가 기술습득과 연구에 전념하며 한글전신 부호를 개발했다.

1885년 1월, 일본 파견을 마치고 귀국했을 당시에도 전신가설에 대한 국왕의 신념에는 변화가 없었다. 김학우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학생을 모집, 전신기술을 가르치면서 전신가설을 준비했다.


당시 김학우는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시점이라 그의 눈부신 활약은 대단하였다. 당시 만들어진 한글 전신부호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독창적인 전신부호였다. 그가 만든 한글 전신부호는 1888년 조선 전보총국이 설립되면서 ‘전보장정’에서 한글 전신부호의 모체로 채택됨으로써 본격적으로 활용되었고, 몇개의 부호만 변경된 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 이다.


김학우는 전신사업에 계속 관여하여 조선의 전신사업 발전에 공헌했고, 이런 가운데 1894년 6월 군국기무처의 위원으로 선임되면서, 대원군파와 군국기무처의 각 세력간의 갈등으로 정파간의 틈에서 김학우는 1894년 10월 31일. 흥선대원군 및 이준용파(李埈鎔派)의 자객인 전동석(田東錫)·최형식(崔亨植) 등에 의하여 32세의 젊은 나이로 목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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