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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어느 시골 소년의 꿈이 이루어지다)5-4탄(종결편)
글쓴이 : DS2SDS  (61.♡.212.98) 날짜 : 2008-02-19 (화) 02:08 조회 : 1372
5_4탄_대학_군생활편.hwp (17.5K), Down : 21, 2008-02-19 02:08:43


시골 어느 소년의 꿈, 이루어지다!

DS2SDS(박종현)


[대학~군대시절~아마추어입문... 프로에서 아마추어로 전향]


열차에 몸을 싣고 대학이라는 목적지를 찾기 위하여 아니, 전공다운 전공을 연구하기 위한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장소를 물색하던중 청주의 어느 대학교에 원서를 들고 과감하게 전자공학과를 향해 돌진을 했다. 그러나, 아뿔싸! 고교시절의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학과를 선택하다 보니 바닷가도 없는 충청도에서 참기름을 묻인 미역국을 먹고 낙향하여 고민을 하였다. 방법은 많이 있었으나 짧은 시간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급박한 상황인지라 2차 지원서에는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고민끝에 결국 대학이나 입학하고 2차 관문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자원공학과를 선택하여 일단 학교를 다녔다. 솔직히 고교시절 배운 전공과목이라 강의시간은 정말 지루하였고 학점이야 기본실력으로 짜맞추면 됐는데 또다시 옛 추억의 뒤안길을 다시 밟아야만하는 그놈의 인두와 회로집을 가방에 넣게 되었고 틈만나면 못다 제작해본 516회로집의 중간부터 뒷장까지의 관심있는 회로를 죄다 만들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서점에서 무설설비기능사 시험문제지를 보게되어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관련서적을 뒤지며 용어해설을 숙지하여 번개불에 콩구워먹듯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오는 내용의 지식은 당시에는 무조건 외워야하는 밀어붙이기식 공부이다 보니 이해와 해설이 필요없었다. 그 서적의 수준은 현재의 아마추어무선기사1급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었다.(이제야 알고보니) 전파법의 규제가 심했던 그 시절 회로집의 소출력도 만들기는 했지만 실제 사용을 하지못하는 단계이므로 훗날을 기약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가정형편상 용돈이 너무나도 궁핍하다보니 고교시절보다도 더 안타까운 처지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도중 하차인 휴학을 하게되었고 울산에서 부모님과 같이 사업을 돕다가 군대에서 직업군인으로 돈좀 벌어서 다시 복학도하고 회로의 제품을 죄다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그 이듬해 여름 어느날 조국의 기수가 되기 위하여 특수부대에 지원하여 군용열차에 몸을 싣고 캄캄한 밤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것이 학교생활의 종지부가 되었지만 아직도 만학도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눈을 떠보니 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고 사람의 혼을 빼앗아 저승사자에게 보관시키고는 잡아돌리는데 태어나서 처음 겪는 정신적 육체적의 고통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악몽같은 시간은 어느덧 몸에 익숙해지면서 간부후보로서의 면모로 서서히 변화하였다.

특수요원의 기본을 갖추고 낙하산 강하훈련을 무사히 통과하면서 주특기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다. 여러 가지 주특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 폭파와 통신주특기가 눈에 들어오면서 또 다시 갈등이 찾아왔다.

아~~~ 학창시절의 아픔이 아직도 여기까지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구나! 하고는 시험문제의 답을 주관적인 판단으로 폭파는 연필을 굴리고 통신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득하다보니 통신주특기를 부여받았다. 이것으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잊지못할 원한의 한을 풀고 통신과목에만 전념을 하다보니 당연히 교육생중에 선두를 달리면서 교수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차지하였다.

기세가 등등한 그 교육생은 밤낮으로 예비교관으로서의 교수법과 FM/AM장비의 취급법, 통신보안, 법규, 음어암호조립해독, CW송수신의 연습을 열심히 하여 소정의 간부교육을 이수하면서 하사관으로 임관을 하였다.

입대하여 7개월만에 휴가를 가는 그의 모습은 저승사자에게 잠시 보관중이던 혼을 불어넣어서인지 절도와 패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 패기는 휴가복귀 하면서 완전히 찢어져버렸다.

전입교육2주후 소속팀에 들어가 신고식을 하는데 갑자기 앞이 캄캄하면서 퍽!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면서 쓰러졌다.

이유는“목소리 봐라~~~!”자갈밭에 탱크 굴러가는 소리라고 하며 URC-87(V)바테리(무게:8Kg)로 뒤통수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한참후 정신을 차리고 몇 번의 복창끝에 신고식을 마쳤지만 또 하나의 관문이 있을줄이야.

고참 통신간부가 전건과 오실레이타를 갖고 와서는 수신준비! QRV(수신준비)QRV QRV BT %$#@&*^%$#%*&....... 아마도 속도가 80~100타/분 정도는 될 듯, 무진장 빠를게 송신하면서 다 수신했냐고 하는데 대답도 못하고 우두커니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허~~~ 군기가 빠져가지고 대가리 박아!”

이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해는지고 어둠이 깔리는 내무반에서 쏟아지는 눈물로 첫 병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똥 오줌 못가리는 신참의 시간은 자신의 시간이 아니고 마치 고참의 전속 소유물이다시피 명령에 까무러치고 명령에 죽는 절대지존의 소유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수(4기수 선배:4년)의 전역소식을 접하면서 불과 3개월 만에 야전훈련에 직접 교신을 해야만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휴게실(사실은 군기교육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왼손은 빠따 오른손은 전건으로 3개월을 연습하다보니 송수신능력이 60자/분 정도에 어떠한 QRM에도 영향을 받지앟고 완벽한 교신을 이룰 정도의 수준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혹한기 동계훈련을 배낭에 FM/AM장비SET와 개인 전투품목을 등에 짊어지고 행군을 하다보니 결국 완숙이 않된 그 신참병사는 도중에 많이 넘어지고 얻어맞고 하면서 그래도 첫 훈련의 보름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하였다. 이젠 자신이 생겨서 인지 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 보초서는 시간, 화장실가는 시간등 틈만나면 두들겨 대다보니 대대에서 “지독한 놈!”이란 말까지 들을 지경이었다.

사실은 고교시절 밴드부에서 사흘돌이로 빠따를 맞았는데 군대와서도 그 이상 무지하게 맞으니 두렵고 지겨웠지만 생애 통신을 주특기로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기에 마냥 즐거웠다.

어느날 외박을 명 받고는 오갈때가 없는 총각이라 대낮부터 부대근처의 포장마차에서 한잔 걸치고는 곧장 여인숙으로 투숙을 하여 미리준비해둔 전건과 오실레이터, 송수신철을 펴놓고 신호음이 들릴까봐 볼륨을 최소로 낮추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뚜뚜 거리면서 손목이 아플정도까지 전건을 두들겨 팼다.(빠따맞은 이런저런 슬픔을 분풀이 하려고)

한참을 연습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군화소리가 들리면서 드르륵~~~! 문이 열리고는 현행범 체포하듯 양팔을 감아쥐고는 간첩신고에 의해 체포한다는 말한마디에 꼼짝없이 독않에든 쥐가되어 곧장 파출소로 연행이 되었고 간첩 신세가된 그는 철창안에서조사를 받았다.

반공, 방첩의식이 투철한 여인숙 주인의 간첩출현신고로 한밤중 난데없이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파출소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저를 비롯해 타 동료들 간에도 흔히 있는 일이었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간첩이 아닌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쇠철창을 이리치고 저리치면서 독기어린 눈으로 여차하면 황소라도 때려잡을 기세였다.

사실 지갑속에는 빨간줄로 사선을 그린“2급비밀취급인가증”이 있었지만 괴씸하기 그지 없어서 일부러 한번 붙어볼 생각이고 골탕을 먹일 생각이었다.

시간을 끌다보니 외박나올때 부대인근에서 짜장면 한그릇에 쇠주 한병먹은 배는 계속 꼬르륵거리지 소주한병은 벌써 해독이 되었지, 장기전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에고 내가 지고말지”하면서 경관을 부르고 자초지종과 신분증을 보여줬더니 “업무상 이러시면 좋을게 뭐 있냐”고 피식 웃으면서 쇠창살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여인숙에 갔지만 주인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보복이 두려워서 ㅎ) 그는 요금 지불없이 하루를 투숙하고 복귀하였다.

이어폰이라도 있었으면 그런 화를 당하지 않았을텐데 ㅎㅎㅎ

그래도 추억속의 감옥생활은 그에게 잊지못할 짧은 순간의 ?방이었다 ㅎ


이렇게 미치광이처럼 주특기에 온갖 정렬을 쏱다보니 자연히 주위의 부러움의 대상이되었고 1년정도 지나자 100자/분 송수신은 거뜬하게 넘겼고 결국 통신주특기 왕이되면서 선수생활과 장기복무의 권유도 받게 되었다.

천리행군때면 야전에서 다이폴을 논에서 풀르고 병사 두명을 논두렁에 세우고 양팔로 당겨서 교신도 해보고 과수원 밭에서 사과 서리겸 다이폴을 치며 굶주린 배도 채워가며 훈련을했다.

중고참이 되면서는 수동전건 134자의 송신 속도를 유지하게 되면서 그의 관등성명은 주위의 통신주특기에서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금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이어서 대전통신학교의 무선장비(AM/FM)특수교육을 수료하면서 전기 전자 무선공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겸비한 만능선수가 되다보니 작전 때 만 되면 한약에 감초 끼어들 듯 전역시까지 간부로서 무전기를 메고 천리행군을 하는 고통(?)과 때로는 즐거움과 보람, 기억에 남는 많은 추억을 간직하면서 사나이중의 사나이들이 사는 특수부대의 선후배를 멀리하고는 베레모를 벗게된다.


[아마추어무선의 만남]

전역 후 에도 수 년 간 자작 깡통 오실레이터와 전건으로 손목이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틈만 나면 두들겨 대곤했는데, 어느 날 강원지역 무슨 기념행사 때 행사장을 기웃거리다가 ‘아마추어무선 공개운용’ 천막을 치고 전신운용을 하시던 동네에 사시는 현 연맹 이사이신 HL2DCB(이종만OM)님을 만나게 되어 아마추어에 입문하였으며, 이제 마음 놓고 세상에 전파를 날리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가장 멋있는 취미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한 시골소년의 당시 꿈과 희망은 전기기술자였고 에디슨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했기에 꿈을 버리지 않고 전공과 관계없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면서도 전공은 전공대로하고, 취미는 취미대로 생활 속에서 즐기면서 현재에도 생업에서 완전히 해방된 취미생활을 가족과 동호인들과 더불어 함께하고 있답니다.


누구나 어린시절의 꿈은 다 있습니다.

그 꿈의 크기가 저울질 할 수 없을 만큼 크면 클수록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세상에 더 없는 큰 기쁨일 것입니다. 그 꿈의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제 어린 소년시절의 꿈은 제 삶에 휴식의 여유와 생활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는 휴식을 주어 누가 뭐라 해도 값지고 소중한 꿈이었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무선 통신사가 되는 과정에서 군의 훈련생활이 인내와 기술을 익히고 완벽한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시간이 되었고, 현재 볼품없는 자작으로 이루어진 장비와 안테나 전건 등 각종 정크들은 틈 만 나면 쓰다듬고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어린시절의 달콤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보곤 하지요.


이 글은 저의 전신 및 아마추어와의 만남과 입문과정입니다.

본 페이지는 전신소개와 활성을 위한 홍보의 란이기에 전신에 관심을 갖고 입문하고자 하는 오엠님들의 장입니다.


아마추어무선의 취미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이크를 주로 잡는 말마추어, 전신운용을 주로 하면서 전파상태를 연구하고 안테나 자작 등에 관심을 쏟는 주물추어, 이웃과 함께 봉사와 재난 시 구호활동으로 보람을 찾는 손마추어 등, 아마추어 무선의 활성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우리 동호인은 직업, 나이, 신분 등 사회 각 분야에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공통점은 아마추어무선을 한다는 것이지요. 아마추어무선의 맥이 이어지는 한 전신은 통신의 기초로서의 우리 햄 들에 의해서 아마추어의 꽃으로 굳건히 지켜지고 중심의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전신을 사랑하고 지켜나가는 진정한 전신인이 많이 등장하여서 우리 왕 거북이 사랑방의 훌륭한 지킴이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연맹과 예하지부에서 전신의 보급에 많은 노력과 협조를 부탁드리며 올 한해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아름다운 모오스부호를 무전기에서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많은 교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연맹 전신위원 DS2SDS(박종현)


HL5JAC (61.♡.197.32) 2008-02-22 (금) 19:42
  재미있는 시골소년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br />배울것도 많았는데 아쉽네요.<br />그 소년 지금도 태백에서 잘 지내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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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1KKC (211.♡.212.92) 2008-02-24 (일) 15:33
  그동안 연재 잘읽었습니다.<br />재미도 있고, 공감도 가고...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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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1QQA (116.♡.171.51) 2008-03-09 (일) 22:27
  언제나 감동적인 오엠님 글 잘~ 읽었습니다.<br />글뒤에  숨은 이야기는 나중에 앉은뱅이와 함께 듣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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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2IOU (152.♡.132.12) 2008-03-12 (수) 22:57
  소년의 꿈이여 영원하라!! 세상에는 꿈도 없이 사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이고, 남자답게 여성스럽게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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